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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년동안의 갈망
이 영화의 주인공 중 한명은 알리테아라는 이름의 여성이다. 그녀의 직업은 서사학자로 인류의 모든 이야기에서 공통된 진실을 찾고자 1년에 한두번은 낯선 땅을 여행하곤 했고, 학회에 참석하고자 터키에 방문한다. 그녀는 도착하자마자 공항에서 정령을 보고, 또 강연에서도 정령을 마주한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그 정령을 보지 못한다.) 그녀는 동료에게 자신의 뛰어난 상상력으로 인해 그런것들을 본다고 하고, 크게 괘념치 않는다. (나였으면 그런 환각이 보인다면 놀라 기절했을텐데 말이다.) 세상의 온갖 이야기에 통달한 그녀여서 그럴수도 있다. 학회에서 강연을 마친 후, 그녀는 시내로 나가 이스탄불의 어느 잡화점 골동품 무더기에서 우연히 한 유리병을 구매하게 된다. 그리고 숙소에서 유리병을 닦다가 그 안에 잠겨있던 정령을 깨우게 되며 이 영화가 시작된다.
줄거리
알리테아는 본인의 선택에 의해 혼자였고, 그녀의 고독함을 즐기는 편으로 보인다. 또한 그녀는 그녀의 지성을 이용하여 독립적으로 살고 있기에 적당히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소원을 들어주는 정령을 만나기 전에도 헛것을 보지만 별로 당황해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상상력이 너무 뛰어난 나머지 눈앞에 형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녀는 이것이 서사학자로서 스스로 좀더 긴장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떨쳐내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강연에서 모든 신과 신화, 괴물과 같은 인간의 이야기는 결국 과학적 서술로 대체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던 중 정령이 그녀에게 고함지르는것을 봄과 동시에 기절하기도 한다.
그 후 호텔로 돌아온 그녀는 기념품인 작은 유리병을 물로 닦았고, 그러던 중 유리병의 뚜껑이 열리며 그 안의 정령이 나타났다. 놀랍게도 알리테아는 크게 놀라지 않고 그의 출현을 받아들인다. 평소에 신화와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연구하는 서사학자라서 그런걸까? 정령은 드디어 세상으로 나온것에 크게 기뻐하며 알리테아에게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이 정령은 자신을 꺼낸 주인의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어야 유리병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운명을 가지고 있었다.
알리테아는 바로 소원을 말하지 않고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며 정령과 긴 대화를 나눈다. 그녀는 어렸을 때 여학교를 다니던 시절부터 혼자인 것을 좋아했고, 엔조라는 상상속의 친구가 있었음을 고백하기도 한다. 그녀는 당시에 결핍에 대한 산물인 엔조에 대해 구체적으로 적어내려갔지만, 결국 유치하다고 느껴 난로에 태워버렸고 엔조도 사라졌다고 말한다.
아마 일리테아는 현재 눈 앞의 정령도 자신이 상상으로 만들어낸 존재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그러나 정령은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자신이 정말 이 곳에 지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상상속의 친구만 있었던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 이 생생한 정령은 그녀에게 음식을 주고 서로 눈을 빛내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알리테아는 그에게 어쩌다 병에 갇히게 되었는지 묻고, 그는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여인들과 그녀들과의
대화로 인하여 병속에 세번이나 갇히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정령은 알리테아에게 3천년동안 유리병에 세 번 갇혔던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세가지 이야기를 풀어낸다.
첫번째 이야기 - 시바
자유로운 몸이었던 정령은 당시 여왕 시바의 은밀한 친구노릇을 하며 그녀에 대한 갈망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녀에게 구애하러 찾아온 솔로몬에게 그녀를 빼앗기고 몹시 괴로워하던 와중에 솔로몬의 마법에 의하여 황동병에 갇히게 된다. 그렇게 정령은 바다 깊은 곳에 가라앉아 2500년의 시간을 보냈다.
두번째 이야기 - 걸텐 (정령의 망각)
바닷속에서 그물에 걸려 콘스탄티노플 궁전까지 오게 된 황동병은 사랑에 빠진 어느 여자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걸텐. 그녀는 노예였고, 왕좌의 후계자인 무스타파 왕자를 사랑하여 그 남자가 자신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소원 빌었다. 곧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고 걸텐은 그의 아이를 임신하기도 한다. 그러나 왕의 후궁의 계략에 빠져 결국 무스타파 왕자가 죽게 되고, 걸텐도 결국 남은 소원도 빌지 않은 채 목숨을 잃고 만다. 다시 속박된 정령은 궁전의 어느 구석 방 눈에 띄지 않는 석탄 밑에서 또다시 길고 긴 시간을 보낸다
두 형제와 여자거인
그 후 정령의 혈통을 가진 무라드가 어린시절 유리병이 있는곳에 이끌렸지만, 어머니의 부름에 응하여 주위가 돌아가 정령은 기회를 놓친다. 결국 무라드는 왕이 되어 여러 전쟁을 겪은 후 피폐해지고, 자신의 영혼을 달래줄 유일한 친구인 이야기꾼을 만나 행복해하지만 그가 죽자 슬픔에 젖어 폐인이 되고만다.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다시 유리병이 있는 석판에 이끌리지만, 그는 너무 쇠약하여 그곳에 다다를 힘조차 없어 들어오지 못한다. 이렇게 정령에게 또다시 기약없는 기다림이 시작되고 만다.
무라드가 죽은 후, 그의 동생 이브라힘이 억지로 왕위에 앉게된다. 이브라힘의 총애를 받던 총독 슈가 럼프는 우연히 석판이 있는 방에서 목욕을 하다가 유리병을 발견하게 된다. 정령은 소원을 들어달라고 절박하게 빌지만, 그녀는 정령에게 다시 병속으로 들어가 해저에 처박히라고 말한다. 결국 정령은 또다시 바닷속 깊은 곳에 가라앉고 만다.
알리테아는 정령의 이야기를 들으며 소원빌기로 인하여 사건과 운명이 얼키고 설킨다는 것을 깨닫고 이것을 두려워하여 소원빌기를 거부한다.
세번째 이야기 - 제피르로 인한 결과
마지막으로 정령이 숨기고자 했던 이야기가 시작된다. 제피르라는 천재적인 여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제피르는 버려진 아이였고, 12살에 나이 많은 늙은 상인과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하여 외롭고 속박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상인이 그물에 걸린 생선의 뱃속에 있던 유리병을 아내에게 주었고, 제피르는 그 안의 정령을 만나게 된다.
똑똑하고 영리했던 그녀는 혼자인 시간에 이것저것 신기하고 놀라운 기계를 만들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녀는 천재적이고 숙련된 아티스트였다. 그녀는 정령에게 이것들을 보여주며 발휘하지 못한 능력들이 자신을 괴롭힌다며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답고 진실한 지식을 갖고 싶다는 소원을 빈다.
정령은 그녀에게 역사, 철학, 언어, 천문학, 수학 등 이 세상의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정령은 배움을 행복해하며 점점 성장하는 그녀를 보면서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그러나 제피르는 계속해서 배우지만 그 속에서 유의미한 결과치를 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서 답답해하고 슬퍼하게 된다.
결국 제피르는 정령처럼 잠자지 않고 깨어있게 해달라는
두번째 소원을 빈다. 그녀는 밤새도록 공부를 하고 학문을 탐구했도 결국 원하는 해답을 얻는다. 제피르는 전자기장과 그 힘에 대한 설명을 찾는다. (전자기장은 정령을
구성하는 물질이기도 하다.)
제피르는 결국 정령의 아이를 임신하고, 그녀에 대한 정령의 사랑은 더욱 커진다. 세상 그 어떤것보다도, 자신의 자유보다도 그녀를 사랑한 것이다. 그래서 정령은 그녀가 세번째 소원을 말하지 못하게 막았고 그것이 싸움으로 번진다.
그런 싸움이 계속되던 중 어느 날 제피르는 ‘당신을 만났던 걸 잊어버리면 좋겠어’ 라고 소리치고, 제피르는 그 말대로 정령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만다. 정령은 그렇게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유리병 속에 다시 갇혀버린 것이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알리테아는 자신의 소원을 말한다. 그녀는 이야기를 들으며 정령을 사랑하게 되었다며, 그녀에 대한 그의 사랑을 원한다고 소원을 빈다. 두 사람의 고독이 하나가 되길 바라고, 이야기 속에서 정령이 쏟았던 그 사랑을 원하게 된 그녀는 이제 확신에 차 있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에 빠지고 함께하는 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던 중 함께 런던으로 가는데, 정령은 도심에서 수많은 전자기장에 영향을 받기 시작한다. (그의 몸이 조금씩 증발한다..) 그렇게 일상을 보내면서 그녀는 정령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
정령들에게는 이야기가 호흡과 같고, 그들을 살아있게 한다고 한다. 정령은 알리테아의 강연을 들으러 가기도 하고, 이 세상과 그 문명을 열정적으로 탐험했다. 그리고 인류가 짧은 시간에 일궈낸 발전에 놀라기도 한다. 인류는 걱정과 불안에 휘둘리는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며 세상을 발전시키는 놀라운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알리테아는 집에 돌아와 지하실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있는 정령을 발견한다. 그녀는 크게 놀라 그가 깨어나게 해달라는 소원을 빈다. 그는 모래가루처럼 부서지고 있었고 잠을 자다가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원래 정령은 잠을 자지 않는데 말이다. 결국 전자기장이 정령을 약하게 한 것이다.
알리테아는 사랑은 대가없이 주는 선물인데, 애초에 자신이 요구했으면 안되었던 것이라고 그녀 자신을 질책한다. 그녀가 자신을 사랑해달라는 소원을 빈 순간 소원을 들어주는 정령의 능력은 없어진 것이다. 알리테아는 정령에게 본인이 속한 곳이 어디든, 당신을 위해 그곳으로 떠나라고 한다. 그가 들어있던 유리병이 깨지고, 이제 정령은 자유를 얻었다.
정령이 떠나고 3년 후. 알리테아는 정령이 해 준 이야기를 토대로 글을 썼다. 그 글의 제목이 ‘3000년의 기다림’이다. 그녀는 정령의 부재를 느끼며 외로워한다.
그렇게 걷던중, 그녀는 문득 정령의 존재를 느낀다. 정령이 그녀의 곁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는 그렇게 가끔씩 찾아왔고, 둘은 그럴때마다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는 그녀가 원하는 만큼 머물다가 떠나곤 했다. 그리고 그는 그녀가 죽기전에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그녀에겐 그것으로 충분했다.
감상평
알리테아는 처음 소원을 들어주는 정령을 만났을 때, 현재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며 소원 빌기를 거절한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세가지 소원을 마다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녀는 세상의 모든 이야기에 통달한 서사학자이고 본인의 삶에 만족하는 현명한 사람이었는데, 혼자여서 고독하고 남이 보기에는 부러워할만큼 화려하고 성공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지만도 스스로의 삶을 만족한다고 느낀다는 점이 참 멋있다고 느꼈다. 결국 자신의 행복의 기준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는것을 항상 기억해야겠다.
그러나 누구나 갈망하는 것은 있는 법이다. 정령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매혹된 그녀는, 훌륭한 이야기꾼인 정령과 사랑에 빠지고 만다. 이야기 속에서 정령이 이야깃속 여성을 사랑하게 된 이야기를 할 때 그녀의 눈은 더욱 빛나고 이것이 어쩌면 항상 외로움을 느꼈던 그녀의 마음속 무언가를 자극했던건 아닐까.
‘우린 누군가에게 진짜일 때만 존재합니다.‘
아무도 존재조차 알아주지 않는 유리병 속에서 3000년을 보낸 정령은 그 기다림이 너무나 외롭고 고통스러웠다고 말한다. 정령과 마찬가지로, 항상 혼자였던 일리테아는 정령과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됨으로써 자신의 고독함을 떠나보내고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존재로서 살고 싶은 갈망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부와 명예, 꿈 같은 소원들을 제쳐두고 바로 당신이 자신의 곁에 있어줄것을 요구한 것이다. 정말 각자의 고독이 만나 서로 의미를
갖고 충만한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된 점이 절묘하고 완벽한 해피엔딩으로 보였다. 그러나 정령은 소원을 들어주는 능력을 잃은 것인지, 현대사회의 수많은 자극과 전자기장에 노출되어 정령으로서 약해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더 이상 일리테아와 함께 할 수 없을만큼 약해지고 만다.
두 사람은 바라던대로 계속해서 같이 살지는 못하지만,
정령의 세계에서 정령이 가끔씩 찾아올때마다 짧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정령은 일리테아가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찾아와 그녀를 지켜볼 것이다. 비록 이상적인 연인의 관계는 아니지만, 둘다 서로를 만나기 전보다 서로로 인하여 훨씬 행복한 삶을 살고 있기에 이러한 엔딩도 아름답다고 느꼈다. 이 영화에서 정령이 들려주는 그의 과거의 이야기들이 분량이 많은만큼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었지만 사실 영화 속 정령의 이야기들보다 이 둘의 우연적이고 운명적인 인연, 아니 어쩌면 필연적이었을
둘의 사랑이 더 인상깊었다. 처음에는 정령이 여자주인공의 세가지 소원을 들어주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 펼쳐질거라 예상했는데, 그런 예측을 빗나가는 내용이어서 더 새롭고 재밌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정령과 일리테아가 벽난로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것만 같은 밤이다.